My Crypto Thesis: Unintended Spontaneity.
블록체인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첫 글 다음 글이 바로 크립토라니. 참 재미없다. 하지만 생각은 정리되는 대로 적어야 하는 법. 그래서 이렇게 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온지도 횟수로 5년이 넘었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5년, 또는 그 이상 이 업계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신다. 물론 난 내 머릿속에 정리해둔 정형화된 답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질문하신 분에 따라서, 그 당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답이 좀 달라진다. 그럼 나는 거짓말쟁이인가.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내가 여태까지 "내가 왜 크립토를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 했을 때마다 이야기했던 본질은 바뀐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운동하다가 그 본질을 한 단어로 정리하게 되었다. 바로 Unintended Spontaneity. 한글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자생성" 정도가 적당할 거 같다.
비탈릭은 예전에 영상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더리움이 어떻게 쓰일지는 나도 잘 모른다."
-비탈릭 뷰테런-
이런 발언을 한 전반적인 맥락에 대해서는 비즈카페에서 올려주신 영상이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시면 좋을 거 같다:
사실 내가 이야기하는 "의도하지 않은 자생성"도 비탈릭이 이야기 한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비탈릭이 이더리움을 만들었으면서 이더리움이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이더리움의 종착지를 결정하는 것이 이더리움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이더리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결과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비탈릭이 이야기 한 것처럼 이더리움이 "표준"이 되려면, 비탈릭 개인이 이더리움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점차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더리움이 종교가 아닌 표준이 되려고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비탈릭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내가 전 포스팅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블록체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블록체인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언제나 흥미로운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을 관찰하고 더 나은 대안들을 제시하는 모습들이 재미있다. 하지만 난 5년간 이 시장에 있으면서, 인간의 의도와 지성이 가지는 한계점들이 명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완벽한 프로토콜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들 중에 완벽한 것이 있었던가. 과거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내가 예전에 a41 미디엄에서도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집단 지성이 아닌, 집단의 복잡성으로.
우선 나는 집단지성을 믿지 않는다. 집단은 때때로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몽매하고, 감정적이며, 쉽게 움직인다.
개인에게서 광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 등에는 거의 예외없이 광기가 존재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하지만 개인은 모든 부분에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집단지성의 대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집단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집단. 즉 사회(Society)다. 물론 사회의 자그마한 부분들을 이루는 집단들은 다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친구들끼리 만나는 모임부터, 기업까지. 하지만 이들이 더 거시적으로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사회는 사실 인간의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엔 엄청난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특정 개인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나?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복잡계 경제학(Complex System Theory)도, 경제라는 것을 수많은 행위자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서 만들어내는 '복잡 적응 시스템' 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설명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디지털 세상을 논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의도하고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고, 신에 도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AI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AI는 내 분야가 아니니 쉽사리 말할 수 없다.
내가 정의하는 사회는 이렇다: 그냥 어찌어찌 하다보니 되는 것. 난 인류의 문명이 이렇게 발전한 것도 의도가 아닌 우연의 연속들이 맞물려서 발생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뛰어나고 비범한 인물들이 급진적 변화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그 역시 그 사람들의 의도대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들이 맞물려서 발생한 굉장히 랜덤한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인간과 사물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인간은 본질보다 실존이 앞서고, 사물은 실존보다 본질이 앞선다. 이 말을 풀어서 말하면, 사물은 사물을 만듦에 있어서 그 용도를 정하고 만드는 반면, 인간은 먼저 태어나고 그 용도(?)는 나중에 정한다는 것이다. 난 여기에 동의하면서도, 인간에겐 또 다른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도 바꿀 수 있는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마취제의 본질은 사람이 다치거나, 수술을 할 때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은 그걸 마약으로 사용한다. E=MC^2 라는 공식도 핵무기를 위해서 나온 공식이 아니지 않나. 인간은 본질보다 실존이 앞섬과 동시에 사물에도 실존 이후에 새로운 본질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나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블록체인과 크립토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써 블록체인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은, 여러가지 본질을 부여할 수 있는 사물이어야 한다. 특정 천재가 엄청난 프로토콜과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정말 우연과 우연이 복잡하게 맞물려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의도돼서 연결되면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상태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엮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가히 위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블록체인이 "인간들로 하여금 복잡하게 상호작용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 블록체인이 중립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검열 저항도 있고 뭐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무색무취해야 복잡성이 용인되기 때문이다. 난 이것을 Unintended Spontaneity 라고 부를 것이다. 복잡성은, 의도하지 않아야 하고, 자생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오픈소스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 매력적인 이유도, 단 하나의 지성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다양한 지성들이 모여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블록체인의 실패는, 짧게 보면 손실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레거시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개발자와 리서처들이 이 씬에 온보딩 되기를 바란다. 실패한 프로젝트도 다시 살려보고, 성공적인 프로젝트도 변형해보고 기존에 부여됐던 본질을 바꿔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난 예측할 수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블록체인 업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기존 블록체인과 서비스들의 변형(iteration)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것과, 이 업계가 가지고 있는 의도하지 않은 자생성(Unintended Spontaneity)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리서처로 할 일은, 그런 것들이 나오면 빨리 찾아내고 빨리 분석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일게다. 그리고 그런 자생성과 복잡성을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블록체인이 종국엔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오랜만에 되살린 블로그에 두 번째 글이 블록체인이라 죄송하다. 운동을 하다가 생각이 정리돼서 빨리 기록하고 싶었다. 다음 글은 블록체인 글이 아닐 것임을 약속드리면서 이만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