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오타니가 야구를 부쉈다.
"오타니가 야구를 부수고 있다."
-MLB
나는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 이유는 스포츠의 본질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나가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선수들을 보면, 국적을 막론하고 존경스럽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신기록들이 갱신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인간에게 한계라는 것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된다. 아니, 애초에 한계라는 거 자체가 인간이 정해둔 것이 아니던가? 무엇이 불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한지를 정해둔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오만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도 내 이러한 생각을 더 강하게 뒷받침 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야구의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Ohtani Shohei)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선수
오타니는 요즘 시대의 베이브 루스이지만, 루스는 한 시즌에 시속 161㎞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고, 홈런 40개 이상, 도루 20개 이상을 동시에 달성한 적이 없다. 오직 오타니만 해낼 수 있다.
-알렉스 로드리게즈(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타자)-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일이다. 사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것을 고교야구 까지는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프로리그에선 거의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다. 그나마 한국 프로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하여 나름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선수는 해태 타이거즈의 김성한(1982~1995)이 유일하다. 1982년이 한국 프로야구가 창단한 해이고, 당시엔 감독겸 선수(MBC 청룡의 백인천)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초기의 프로리그는 예외로 두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진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어느정도 성숙한 프로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하며 오랜 커리어를 쌓는 경우이다. 전 세계 최고의 무대라고 불리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투수겸 타자였던 베이브 루스가 투수와 타자를 겸해서 성공하긴 했지만, 결국 그 괴물 베이브 루스도 2 시즌을 겸하고 나중엔 타자로만 야구를 했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투수겸 타자로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 야구의 신으로 모두에게 추앙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야구의 신'도 2시즌을 넘기지 못했던 것이 투타겸업이다. 그런데 오타니 쇼헤이는 어떤가?
미친 성적
오타니는 매일 타석에 서고 일주일에 4~5일 간격으로 선발 등판한다. 투타 양면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걸 믿을 수 없다. 오타니를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압도당했다. 에인절스는 올스타 브레이크 후 우리팀을 상대한다. 그때 오타니를 더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맥스 도리안 프리드(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소속 투수)-
두 선수의 성적이 아니다. 아니. 두 선수의 성적이라고 할지라도 이 성적은 감탄이 나올만한 성적이다. MLB는 동네 야구리그가 아니다. 전 세계의 최고들만 모아놓는 꿈의 리그에서 투수로 통산 방어율 2.96을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일 것이다. 그런데 오타니는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타자로 출전해 5번의 시즌동안 총 127개의 홈런을 뽑아내고 타율도 2할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말 그대로 리그 최정상급 투수의 일을 하면서 타자의 일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타니는 어떻게 이렇게 불가능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었을까?
그 유명한 만다라트 계획표
쓰레기를 왜 줍냐고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겁니다
-오타니 쇼헤이(그의 저서에서)-
평소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걸 싫어하는 나지만, 만다라트 계획표를 세우고, 그대로 실천하고 실제로 야구선수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 불문율을 깨고있는 오타니를 보면 "내가 지금 인생을 잘못살고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다라트 차트를 보면 정말 경외감이 들 정도로 체계적이고 계획적이지만, 내 눈에 가장 띄는 부분은 오타니가 성공함에 있어서 "운"이라는 요소를 빼놓지 않았다는 것과, 그 "운"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는 부분이다. 운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 하늘의 뜻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타니는 그 운을 위해서 본인이 해야하는 세부적인 행동들을 정해놨다.
결국 운이라는 것도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성도 실력이다."하는 말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선수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오타니는 슈퍼스타가 된 지금도 야구장에 있는 쓰레기들을 솔선수범하여 줍기도 하고, 심판에게 가장 예의가 바른 야구선수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운을 만드는 것이라는 오타니의 태도가 정말 맞는 말인게. 심판을 좋은 태도로 대하거나, 야구장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일상화 한다면 절대로 그것들이 오타니에게 나쁘게 돌아올리는 없을 것이다. 심판도 사람이기에 판단이 애매한 경우에 오타니에게 좀 더 편향된 판결을 내릴 수 있고, 오타니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오타니의 팬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타니가 야구를 부쉈다는 의미는 단순히 그가 야구에서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일들을 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투수와 타자로써 괴물같은 성적을 내는 이가, 구장에 널브러저있는 쓰레기들을 줍고, 심판에겐 깍듯하며, 상대팀 선수들을 높게 평가하고, 인사도 열심히 하기 때문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파괴적인 것은 언제나 짜릿하다
내가 오타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야구를 좋아하고 그 야구를 너무나도 잘해줘서도 있지만, 오타니라는 존재 자체가 야구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파괴적인 존재인 부분이 제일 크다고 볼 수 있다. 오타니는 자신의 후배들에게 투타겸업을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투타겸업을 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앞으로 오타니의 활약이 여태까지 야구선수를 키우는데에 있어서 불문율로 여겨져왔던 "투수는 투수만, 타자는 타자만"법칙을 깨는 것일수도 있는거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MLB는 실제로 오타니를 위해서 자신들의 룰을 개정하고,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오타니를 보기 위해서 야구장을 찾을 정도다. MLB 올스타 역사상 최초로 투수와 타자 동시에 올스타로 선정된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기도하다. 말그대로 오타니가 생태계 교란종인 것이다.
아마 오타니가 MLB에서 더욱더 활약할수록, 앞으로 야구선수들을 키우는 공식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야구가 오타니 전과 후로 나뉠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시장에서의 새로운 창조는 필연적인 구질서의 파괴라고 하였다. 내가 스타트업을 좋아하는 것도 스타트업은 파괴적인 성격을 갖고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난 구 질서를 파괴하는 인물, 기업들을 좋아한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낡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야한다. 그런 맥락에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데 난 저런 만다라트 차트 같은 것을 만들어서 살라고 하면 숨 막혀서 뭘 하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이기에. 오타니 같은 인물은 못되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