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결핍은 무얼까: 결핍에서 동기찾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누가 나에게 물어봤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나에게 '결핍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결핍이 있지. 난 결핍 중에서도 가장 고약하다는 애정결핍이 있다. 그것도 아주 심한 애정결핍. 그러면 혹자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연애를 하세요."
맞는 말이다. 연애를 안 한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예전엔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소개를 해달라고 앵무새처럼 말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어떤 애정결핍이 있는지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태까지 끌렸던 것들을 보면, 내가 어떠한 결핍이 있고 그 결핍을 어떤 방법으로 채우고자 했는지가 보이더라.
내 결핍은, 대중에 대한 결핍이다. 이성친구에 대한 결핍이 아니라, 그냥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받고자 하는, 어찌보면 타고난 관종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그런데 이놈의 결핍은, 채우기 정말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대중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전체 인구의 몇 퍼센트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처음으로 되고 싶었던 것은 가수였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가?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것을 평생의 업으로 여길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항상 이어폰을 들고 다니고, 취미는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만 결국 이 모든 행동들의 끝에는 '관심'이 있다. 내가 마이클 잭슨을 보고서 가수의 꿈을 품었던 이유는, 마이클 잭슨이 멋있어서라기 보다는 마이클 잭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에서 가수가 되고 싶었다. 예전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왜 가수가 되고 싶어요?" 라는 심사위원의 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게 좋아서요."라고 했던게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오디션에서 떨어졌던 이유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아닌, 대중의 관심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혼자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난 물론 지금도 언제나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나가서 노래를 부를 준비가 되어있다. 정말 관종 그 자체. 돈은 필요없다. 버스킹 자리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다.
아이폰이 아닌, 아이폰에 열광한 대중들
내가 처음에 미국 유학을 준비할 때, 세상은 아이폰 때문에 난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의 기능과 혁신적인 UI에 열광할 때, 난 잡스의 PPT 기술과 제스쳐, 표정과 행동들에 관심이 많았다. 어떤 식으로 발표를 해야 사람들이 열광할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이폰을 실제로 구매한 것은 iPhone 4S 이후였으니 사실 그 전까진 아이폰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그게 UI가 좋든 나에겐 그런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놀래킨 방식에 매료됐다. 잡스를 보고서 나도 언젠가 기업인이 돼서 대중들 앞에서 프로덕트를 기깔나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물론 내가 어떤 기업의 오너가 될지, 어떤 프로덕트를 설명할지는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볼품없는 프로덕트도 기깔난 작품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연설 하나로 대통령 후보가 된 배우
레이건은 잘 생겼지만 배우 출신에다가, 유명한 배우도 아닌 B급 배우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미국 40대 대통령이 되었을까? 심지어 재선때는 초선때보다 더 압도적인 지지율로 미국 전역에 "보수혁명"을 일으켰다고 할 정도로 미국 정치의 판도를 뒤흔들었던 인물이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배우가, 어떻게 단숨에 미국을 뒤흔들게 되었나보면, 그 비결은 그의 연설에 있었다. 정치 경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레이건이 스타덤에 올랐던 것은 그가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의 지지연설을 하면서였다. 당시에 냉전과 베트남전에 지친 미국 국민들에게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위닝 멘탈리티를 짧고 강렬하게 던졌다. 잘생긴 외모에 준수한 목소리, 물 흐르는듯한 말솜씨. 원래 해당 연설의 주인공은 배리 골드워터였어야 했지만, 졸지에 레이건이 주인공이 되었다. 미국 국민들은, 그 연설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책임질 리더의 후광을 본 것이다.
이 연설 이후로 국민들은 레이건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레이건은 이 지지를 기반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서 미합중국의 제 40대 대통령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보수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다. 레이건 8년 이후로 공화당에서 나오는 모든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을 "제2의 레이건"으로 프레이밍 할 정도로 레이건은 지금도 미국 보수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난 레이건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한때나마 정치인을 꿈꿨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을까? 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난 정치야말로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지막 영웅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사람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론 폴(Ron Paul) 하원의원을 꼽을 것이다. 지금도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2008년 2012년 그리고 2016년, 무려 8년에 걸쳐 미국 전역에 자유주의(Libertarianism)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다. 내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론 폴 하원의원을 쫒아다니면서다. 70대 후반의 노인이었고, 정치인이었지만 비트코인의 파괴력에 대해서 시인하고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중앙집권화가 어떠한 부정적 결과를 야기하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하였다. 론 폴 하원의원이 던졌던 메시지인 "평화, 자유, 책임"은 지금도 내 삶의 모토이다. 론 폴 하원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는, 미국 전역의 대학생들이 Students For Ron Paul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학생 단체 규모로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조직을 자생적으로 결성하였다. 론 폴 하원의원은 굉장히 비주류의 정치인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늘 무시를 당했던 인물이지만 학생들의 엄청난 지지와 함께 '론 폴 무브먼트'라는 전국적인 운동이 탄생되며 이는 단순히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가 아닌 론 폴 의원이 던진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부활이었다.
론 폴 하원의원의 연설과, 책을 전부 다 읽고서 깨달은 것은 메시지의 '진실됨'이었다. 미국의 젊은 사람들은 론 폴 하원의원의 논리적 일관성에 열광하였고, 정치인으로서 지대추구를 하는 것이 아닌 미국 건국의 이념을 따르는 론 폴 의원의 메시지에 대한 열광이었다. 내가 '메신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도 결국 론 폴 의원의 활약 덕분이다. 마이클 잭슨, 스티브 잡스, 로널드 레이건의 경우엔 내가 3자의 관점에서 열광하는 대중을 봤다면, 론 폴의 경우엔 내가 열광하는 대중들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진실되고 논리적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난 왜 열심히 살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돈 때문에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닌 거 같다. 물론 난, 돈이라면 환장을 하지만 정당한 대가로 지불받은 돈이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매료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내 꿈이 바뀐 흐름을 보면 딱 그렇다고 느낀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엔 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을 통해서 충격을 받는 사람들, 영감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자극을 받는 사람들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관종이다. 그런데 관종인게 어때서? 적어도 관종이기 때문에 더 발칙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면 난 죽을 때까지 관종을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메신저가 되고싶다. 그러면 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