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a41을 뒤로하고.
항상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부모님이 습관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도 나중에 자식 낳아봐.
뭐 물론, 난 결혼은 커녕 아직 연애도 못하고 있는 현실속에서 살고있지만, a41은 뭐랄까. 나에게 그냥 "회사"정도로 치부되기엔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혈연이라고 하기엔 내 물리적인 피와 DNA를 섞지 않았기 때문에 모호하지만, 나 자신이 지난 2년간 a41에 녹아져 있었기 때문에 a41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내가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만들어온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식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자식이야 낳아봐야 알겠지만, a41은 뭔가 나를 가장 닮은 나의 피조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a41을 떠나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나는 a41을 왜 시작했는지, 그리고 a41에서 가지고 가는 추억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왜 우리는 멀티코인처럼 섹시할 수 없지?
물론 섹시의 정의는 정말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a41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멀티코인(Multicoin Capital)과 패러다임(Paradigm)을 보면서 이들은 항상 근거있는 투자를 집행해왔다고 생각했고, 그게 나에겐 너무나도 섹시했다. 물론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것은 모든 VC들이 하는 것이지만, 멀티코인은 시장 트렌드를 거스르는 역베팅을 통해 자신들의 가설을 검증하고, 패러다임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미래에 베팅해왔다. 시장에 대한 역베팅이든 연구 기반의 투자든 난 충분한 논리만 갖춘다면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에는 상승장 초입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정말 무지성 투자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우리가 암호자산 투자자들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하는 디젠(Degenerate)이라는 말도 간단하게 말하면 '뇌를 빼고 투자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나 또한 근거 없이 투자를 했던적이 많아서 나 자신도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디젠들이 성행하는 이 시장에서 이성을 논하고 싶었다. 장기적으로는 논리적 근거와 블록체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시장에서 큰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a41의 초창기 네 명은 모두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인 John의 글로벌 인맥도 내 입장에선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John의 인맥과 비전, 나의 글, Eric의 명석함, Ethan의 묵직함(미친듯한 러닝커브는 덤이다). 크립토 VC로써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 그게 나에겐 a41이었다.
나도 주목을 받고 싶었다.
a41을 시작하던 당시에도 난 꽤 "경력직"이었다. 현대 BS&C에서 2년을 넘게 근무했고, 그 전에도 난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비주류 루트로 이 업계에서 나만의 커리어를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피해의식일지는 몰라도, 당시에 나에게 있어서 블록체인 엘리트 코스라는 것은 뭔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블록체인에 미친 사람들만 모여있던 논스(Nonce)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거나, 서울대학교 블록체인 동아리였던 디사이퍼(Decipher)에서 블록체인을 연구하는 것이 '크립토 인싸'가 될 수 있는 길이었다. 물론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두 커뮤니티는 블록체인 입문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말인 거 같기는 하다.
난 내가 내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서 디사이퍼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논스는 뭔가 나에겐 '투머치'의 느낌을 줬었다. 그래서 난 커뮤니티에 의존하지 않고 내 스스로가 커리어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내가 업계에서 주목받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이 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대중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데 내 고집대로 커리어를 만들다보면 돈은 어느정도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블록체인 업계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을 거 같았다. 그렇게 초조해지던 시점에 a41이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이다.
어느정도 업력도 쌓였겠다. 글도 이제 잘 쓰겠다. a41은 나에게 있어서 뭐랄까. 날개 같은 느낌이었다. 4년동안 업계에서 방출하지 못했던 인싸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달까. 당연히 덥썩 물었고, 난 지금 감사하게도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나름대로의 '인싸'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a41은 내 인생에서 틀린 선택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장을 선도하고 싶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시장을 선도하고 싶었다. 한국 크립토 VC들이 당시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프로젝트들과 재단에 접근했었다. 맨 처음에 a41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한국 크립토 트위터는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지금이야 많은 회사들이 자기 자신의 회사를 트위터 아이디 옆에 적어두지만, 그 때 까지만 하더라도 그것은 외국의 문화였지 한국의 문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a41이 그런 문화를 한국 트위터에 들여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는 투자, 쓰는 글마다 트위터와 미디엄에 공유하고 많은 사람들과 우리의 관점을 공유했다. 그게 당시엔 꽤 파격적이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a41의 이름을 빠르게 각인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팔로워가 1000명, 2000명, 3000명,, 늘어날 때마다 행복했다.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도, 내 리서치를 통해서 블록체인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의 커멘터리도 나에겐 돈으로 환전할 수 없는 가치였다. 또, a41이 했던 것처럼 트위터로 자신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회사의 이름을 트위터 계정에 넣는 경우들도 많이 생기면서 기분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트렌드를 이끌었다."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의 착각이라고 말씀 하실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미디엄에 글 열심히 쓰고 나서부터 다른 회사들도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거든(아님말고).
단기간에 폭발적인 인지도 성장을 이뤄냈다.
정말 미친듯이 일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시에 미국에 있었어서 밤과 낮이 달랐지만, 밤과 낮이 다르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만큼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배려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직도 2021 메인넷 행사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에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a41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a41을 소개하고, a41의 비전을 설명했다. 당시에 누군가의 연락처를 알아와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 사람의 세션에 청중으로 참여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들을 쏟아내며 연락처를 받아왔다. 4년만에 미국에 간거라 영어도 어눌해지고 어색했지만, 당시에는 필요한 연락처를 받아내고 서로 투자 딜을 받아올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더 절박했던 시기였다. 세션이란 세션은 전부 참여하고, 사이드 이벤트란 이벤트는 다 참여해서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셔가며 이들과 교류하고 연락처를 받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어떻게 기억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프랭크형(팩트블록)이 셀카를 찍어서 그 사람의 텔레그램에 보내놓으면 얼굴을 각인하고 좋다고 하셔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셀카를 찍고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뭐하는 사람인지를 어필했다.
당시에 우리는 네 명 뿐이었어서, 메인넷 행사는 나 혼자 참여했는데 솔직히 많이 외롭기도 했었다. 보통은 팀 단위로 오는데 나만 혼자였던 거 같아서.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성과를 냈던 시기이기도 했어서 지금도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뉴욕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나 뿐만이 아니라 a41 네 명 모두가 a41의 인지도 향상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우리는 반 년만에 a41이란 브랜드를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에 성공했다. 운도 좋았고 시장도 좋았지만, 우리 모두가 노력한 것도 당연히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 모두가 열심히였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시기다.
성장한 인지도 만큼이나 늘어난 부담감
a41은 그렇게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여 a4x라는 벨리데이터 회사로 확장하게 되었다. 4명으로 6개월을 유지하다가 8명, 10명, 15명, 20명, 25명, 30명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뭐랄까. 큰 부담을 느꼈다. 애초에 난 창업을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사람이라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은 늘 내 마음 한켠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어린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냥 당시에는 a41이 성장하는 것이 신났고, 사람들이 a41을 알아주는 것이 신났다. John이 투자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는, 그동안의 노력을 수치화 한 거 같았고, 뭔가 내 노력이 숫자로 나오니 내 노력을 인정받고 그게 가치로 환산된 거 같아서 기뻤다. 그런 기쁜 마음과 들뜬 마음에 더 신중한 고민을 하지 못했던 거 같다. a41에서 a4x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한적이 있는가? 그냥 마냥 신났던 거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뭐지? 나는 글을 쓰는 글쟁이고, 리서치를 하는 리서처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사실 고민하지 않았던 거 같다. 인생의 무계획이 내 삶의 모토중에 하나인데, 적어도 회사를 만들 때 만큼은 그런 방식으로 했어서는 아니됐다. 결국 이러한 부담감이 쌓이고 쌓여서 터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난 a41에 투자를 하러 왔었다. 멀티코인이 좋았고, 패러다임이 멋졌다. 리서치의 가장 끝에는 투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내가 본 투자업의 본질이었다. 물론 하고싶은 것들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이 삶이지만, 하고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면 해야하는 것도 인생이다. 난 a4x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난 굉장히 나이브한 사람이라 당장의 성공도 좋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망할 때 망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리서치로 시작해서, 투자를 하고, 좋은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더 나아가 프로젝트들을 인큐베이팅 해주는 일.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한 줄로 정리될 수 있었다. a41은 내가 없어도 충분히 잘 될 수 있는 회사다. 훌륭한 동료들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기 때문에 나는 내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a41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죄책감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없어도 될만큼 성장해준 a41이 너무 고맙다.
헤어짐의 원인이 언제나 갈등은 아니다
물론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자잘한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a41을 하면서 공동 창업자들과 갈등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a41과 이별하는 이유가 갈등 때문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왜 이별을 하나?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갈등이나 다툼이 원인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다. 나는 후자에 더 가깝다. 이제 내 나이도 20대 후반인데 좀 더 도전적인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은 이게 진심이다. 나머지는 다 핑계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앞으로도 a41의 든든한 영업사원이 될거다. a41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구성원들을 누구보다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가 이제 지분이 있든 없든 a41의 성공은 곧 내 피조물의 성공이다. a41이 성공해야 내가 더 유명해진다. 나를 위해서라도 a41은 꼭 성공해야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a41을 도울 생각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초창기 4명이 한 번에 어디를 가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메인넷 때는 나 혼자. NFT NYC때는 John, Eric,내가 갔었고. 그 이후에 다양한 이벤트들도 우리는 나눠서 갔었다. 초창기엔 4명이 전부였어서, 누군가는 회사를 지키고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네 명이서의 추억이 하나도 없는 것은 조금 아쉽고 후회스럽다. 언젠가 a41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초창기 네 명이 모여서 어디든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물론 a41이 성공하면 돈은 남은 분들이 내줄것이라 믿는다 ㅋㅋ). 그 때가 된다면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도 추억하지 않을까. 그 날을 고대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은 이런 말을 한다.
Part of the journey is the end.
여정의 끝도 여정의 일부라는 말이다. 좋은 끝맺음 역시 좋은 여정을 만드는 일부다. 나의 a41이란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만 이 끝을 아름답게 맺고싶다. 어쩌면 20대 후반이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으므로 아름답게 기억하고자한다.
Good Bye a41.
-all for one, one for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