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없을 때, 비로소 광기가 나온다.
회사를 운영할 때도, 어떤 다짐을 할 때도 사람들은 나에게 목표를 강요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살아야 할까. 구체적인 목표들은 오히려 내 삶을 옭아맨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기회가 생겼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게 하고, 목표에 매몰되면 내 자신의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미 이에 대해서는 내가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올해 6월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엄청난 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그냥 우리 동네에 24시간 헬스장이 생겨서 시작한 다이어트다. 남들처럼 바디 프로필을 찍는 것도 싫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워낙 내 성격이 남들이 다 하는 것은 싫어하는 성격이다 보니),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까지 어떤 목표치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없었다.
사실 나에게 이번 다이어트는, "목표가 없는 실천이 어떤 광기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자가 생체 실험이었다. 계획이 없으면 불안하고, 항상 뭐든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잘 될 수 있고, 오히려 그러지 않아야 진정한 광기가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난 30년을 살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 정도로 식탐이 많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태까지의 다이어트엔 구체적인 목표(체중 얼마, 체지방량 얼마, 골격근량 얼마)를 세워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매주 인바디를 재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엔 아무런 목표 없이, 다이어트 그 자체에 내가 매몰되어 보자는 다짐을 했다. 아래는 내가 막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인바디이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난 지금의 체지방률은 아래와 같다
물론, 내 다이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듀럼밀로 만든 파스타를 시켜서 먹었고, 운동 이후에는 굽네치킨 오리지널을 시켜서 스리라차 소스(칼로리 0)에 찍어 먹었다. 내일은 운동을 간 다음에 소고기를 먹을 계획이다.
체지방률을 어디까지 떨어뜨리는 게 목표인가? 없다. 그냥 올해는 1년 내내 다이어트에 뇌가 절여진 삶을 살 생각이다. 목표 없이 무작정 매몰되는 것이다. 내가 비교적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냥 하는 것"이 가진 힘은 정말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를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것. 대신 하고 있는 일 자체에 극단으로 매몰돼서 하루하루 그것들을 실천하는 것. 때로는 깊은 생각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그냥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변화들이 일어나더라.
난 무엇보다. 목표를 세워야 잘 된다는 명제를 사람들이 당연히 진리로 여기는 것이 싫다.
삶에는 정답이 없음에도, 목표를 세우지 않은 삶을 실패한 삶이고, 촘촘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이라면 별로인 기업이라는 팽배한 믿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옭아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OKR(Objective & Key Result)을 세우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는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OKR을 세우고 달성하거나 OKR을 세웠을 때 세부 계획대로 이행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회사는 잘 운영되고 있다. 회사에서 중대한 결정을 할 때 OKR을 상기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소신 발언하자면, 난 때때로 OKR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굳이 필요도 없는데 무조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더 성장하고 더 폭발적일 수 있는데 OKR로 인해 성장이 제한되는 느낌. 또, 억지로 필요 없는 OKR 항목들을 만들어 회사가 산으로 간다는 느낌.
그저 우리 회사에 좋은 기회가 오면 받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그게 우리 회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으로서도 그렇다. 좋은 기회가 오면 받고, 일이 주어지면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다 보면 점점 내려간 내 체지방률처럼 좋은 결과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8%의 체지방률을 잡아놓고 운동하면 모든 운동과 식습관이 거기에 맞춰지겠지만, 그냥 다이어트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하루하루 다이어트에 최선을 다하면 8%, 그 아래까지 갈 수도 있다.
난 요즘 삶을 살면서 "남들이 이래야 성공한다."라는 말을 경계하는 편이다. 삶이 과학이 아니듯, 창업도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회사도, 경영도 공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창업과 삶이 주어진 공식에 내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었다면, 한국이 창업 1등이지 않았을까?
목표를 세우고, 세부 목표들을 세우는 데 한 달을 보내며 결국 그 목표들을 달성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지기보다는, 여러분이 하는 일에 매몰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 또한 누군가에게 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보기 전에 "오늘이 몇 요일이었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못할 정도로 자신이 하는 일에 미쳐본 적 있는지는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꿈을 버려라! 목표를 버려라! 그리고 지금 주어진 삶에 밀도 있게 녹아들어 보는 것도 좋다. 주어진 일에 진정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게 되고, 포기하지 않으면 최상으로 이룰 수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사실 저는 목표가 없어요.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가 정해졌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걸 회피하는 편이라서 따로 목표를 세우지 않아요. 그러나 무언가 맡겨지면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합니다."
-유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