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죽고싶다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나 맡겨라."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이제 만으로 겨우 28년을 살았지만,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강제로 휴학을 하며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할 때도,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나의 법적 보호자 역할을 해줬던 목사에게 학대를 당했을 때도, 현대 BS&C에 있을 때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나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멀면서도 가까운지에 대한 자각과도 비슷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늙는다”라는 사실과 “죽는다”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부모님도 영원히 사실 것이라고 착각하고, 나 역시 영원히 젊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착각 속에 살기 때문에 삶이 농밀하지 못하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의 한 순간이라면, 헛되이 보내도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죽고있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
하지만 삶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열심히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거창한 꿈이나 목표, 욕망과 야망 때문이 아니라, 재수가 없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점점 “죽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더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나?” 묻지 않는다. “잘 죽고 있는가?”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8월 14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일을 축하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내가 스스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난 것이 그렇게 축하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에게 내 생일은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께 축하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그 두 분의 생각을 들어봐야겠지만, 나로 인해 당신들의 인생이 좀 더 행복해졌고, 보람이 있었다면 내가 태어난 날은 그 두 분에게 있어서 축하할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생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날이길 바란다. 하지만 적어도 내 생일은, 내 자신과는 큰 관련이 없다.
나는 생일 파티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잘 모았다가, 돈도 잘 모았다가 내가 죽는 날 파티를 성대하게 열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것은, 내가 죽는 날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내 생일에 축하해주시지 않으셔도 된다. 내 부모님을 아시는 분이라면, 부모님께 “어휴, 어쩜 이런 아들을 낳으셨나요. 축하드려요!“라고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영생은 축복이 아닌, 불행이다.
"궁극의 자유는 죽음밖에 없다. "
-도올 김용욱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내가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죽고 싶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인생을 사랑하는 이유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영생은, 2,100만 개의 비트코인이 무한대의 발행량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희소하지 않은 것은 가치롭지 못하다. 삶도 그렇다. 나는 내 삶이 희소하길 바란다. 소중하길 바란다. 그래서 유한하길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삶은 그렇다. 물론 살면서 즐거운 일도, 행복한 일도 많지만 삶이 고통인 이유는 “행복하다, 즐겁다”의 감정보다 더 거시적인 개념이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매우 버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버거움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주어진 삶이야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겠지만, 누군가가 삶을 더 준다고 하면 감사하지만 사양하고 싶다. 쉬고 싶다.
결혼을 하면 다를까, 아이를 낳으면 다를까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나는 종종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고통인 삶을 연장하고 싶은 욕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삶이 고통일지라도 유지하고 싶어진다. 더 오래 보고 싶어질 테니까.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법칙에 의해 그렇게 살아가도록 설계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기 때문에 “잘 죽는 것”에만 신경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잘 죽고싶다
잘 죽는다는 것은, 1) 죽을 때 죽더라도 질병에 시달리면서 죽는 것이 아닌,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 2) 죽기 전 삶을 돌아봤을 때, 내가 이 세상에 해준 것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인 것, 3) 내가 죽는 날에 성대한 행사를 열 수 있는 자본금과 네트워크가 있는 것이다. 중요도는 1) > 2) > 3)이다.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닌, 죽는 날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면 참 좋겠다.